임무에서 복귀한 후 란슬롯의 세족식을 임의로 거행하는 카메론.
얼핏 낮은 자가 높은 이에게 마음 쓰는 것으로 보이기 십상인 주인의 행동에 종복은 놀라 제지하려 해 보지만 카메론은 예수 또한 제자의 발을 씻겼노라고 신약성서의 고사를 감히 혀에 올려 그의 입을 다물리고 도로 자리에 앉힌다.
어떤 무게를 짊어졌으며 또 짊어져야 할 족적일까. 카메론은 세심한 손길로 향기로운 미온수에 연모하는 기사의 발을 씻기며 그이의 굳은살 박인 발에 실리곤 하는 게 비단 그의 체중과 중갑의 무게뿐만은 아님을 여실히 느낀다. 오랜 죄업에 고생깨나 하며 이 발로 억척스레 삶을 구가하고 있을 테지.
모로 보나 참으로 견고해 보이는 남자의 두 다리였으나 그것에서 스스로의 골조나 다름없던 애착 대상을 상실하고 저절로 무너지려 하는 폐건물과도 같은 경향을 읽은 이상 그의 새 주인은 제 채찍을 한시도 쉬게 둘 수 없다. 그러니 작금의 둘의 세족식도 관념적으론 쉼의 시간이 아니다.
이제 카메론은 란슬롯의 앞길에 범인류사의 명운 또한 지우려 한다. 인리의 부품이 되어 망가져 스러질 날까지 칼을 뻗으며 제 쓸모를 다하라. 그것은 고압적인 주군이 내리는 잔혹한 처사인가? 또는 그의 뇌리에서 자멸적인 사고를 억지로라도 지워 나가려는 주인의 총애 어린 고육지계인가?
카메론은 어느새 깨끗해진 란슬롯의 발등에 친히 제 이마를 대었다 뗀다. 마음부터 어린 놈답잖게 그때만큼은 어찌나 도착적인 몸짓이었는지. 다음 순간에는 꼭 입술이라도 내리누를 것 같은 기세였으나 기대에 반하게 그는 몸을 물리고 란슬롯에게는 이만 신발을 챙기고 가도 좋다는 눈짓이 떨어진다.
카메론은 인리를 위해 헌신의 발품을 팔 적에 일시적으로 제 검인 란슬롯 또한 저와 함께 망가져도 좋다고 생각한다.
그럼에도, 여전히. 아직 하중을 견디면서도 금 하나 가지 않은 그의 무훼의 신체가 말단까지 마디마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아니할 만큼 아름답다고 생각한다.란슬롯은 제 주인의 정욕보다는 식욕의 표현에 가까운 날것의 시선에서 가끔 그 모순을 읽는다. 세족식에서도 그는 어김없이 정염에 타는 어린 맹수 같았기에 기사는 돌아서 홀로 허탈한 웃음을 흘리고 만다. 믿음직스럽고, 정의로우며, 또 한편 어느 모로 보나 무자비한 야수, 나의 주인....
수십 킬로미터 길이의 황량한 자갈밭을 지르밟은 종복의 발끝에서는 종내 주군의 고집대로 라벤더 향기가 났다. 마스터께서는 대체 무슨 기준으로 그 향료를 고르셨을까. 마치 정사 다음날의 연인 같은 질문이라도 던지고 싶어져 기사의 서배튼 앞코는 이튿날 스태프실의 굳게 닫힌 문앞으로 향한다.
이것이 당신의 사랑이라면.